사우디, 미국보다 OPEC+ 함께 이끄는 러시아 우호 중시

[서울와이어 장경순 기자] 사우디아라비아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여러모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좋은 관계를 갖기 어렵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재임시절 양국 관계가 워낙 돈독했던 터라 그에 따른 반대효과도 있지만, 바이든 정부의 노선이 곳곳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입장과 배치된다. 미국이 트럼프 시절 이란에 대한 초강경 태세에서 다소 물러나는 것부터 근본적인 갈등이 시작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현재 예멘에서 이란과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때는 미국이 드론 공격으로 이란의 혁명수비대 사령관 거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을 살해한 일도 있었다.

또 바이든 대통령의 민주당은 2018년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에 빈 살만 왕세자의 개입 의혹을 강하게 추궁했다.

2000년 대통령선거 기간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를 “외톨이 국가”라며 무시하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바이든 대통령이 더 이상 사우디아라비아와 빈 살만 왕세자를 무시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세계 최대 에너지 소비국 미국으로서는 배럴당 100 달러를 넘은 국제유가 안정을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증산을 요청해야 할 입장이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산유국들은 석유소비국의 요청에 따라 7월과 8월중 석유생산을 일평균 64만8000 배럴로 늘렸다. 에너지가격 급등으로 인해 8%대 인플레이션을 기록 중인 미국으로서는 턱도 없는 증산규모다. 산유국들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가 9월 이후 증산에 앞장 서 줘야 될 입장이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지금까지 사우디아라비아와 빈 살만 왕세자를 강경하게 대한 체면을 완전히 접을 생각이 없다. 그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방문 기간 “사우디아라비아에 증산을 직접 요청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제공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실 바이든 대통령이 증산을 강하게 요청하더라도 빈 살만 왕세자가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단순히 지난 세월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산유국들의 맹주 위상을 지키는 데는 또 다른 주요 산유국의 협조가 필요한 현실 때문이다. 그 상대가 바로 러시아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현재의 국제유가 급등을 이끌어낸 당사자다.

현재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는 이른바 ‘OPEC+’라는 협력기구로 산유국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OPEC+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OPEC 회원국들이 동참한 협의체다.

2020년 국제유가가 한 때 마이너스를 기록할 정도로 석유공급 과잉이 심각했을 때 OPEC+는 특히 큰 힘을 냈다.

OPEC+를 통해 구축한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우호관계는 지금도 여전하다.

오일프라이스는 3일 기사를 통해 OPEC+의 협력체계가 절실한 사우디아라비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의 우호 관계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따라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증산에 나설 지 여부는 미국의 요청보다 러시아와의 합의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매체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 2월 이후 OPEC+ 협력에 관해 몇 차례 전화통화를 가졌다. 지난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경제포럼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에너지장관 압둘라지즈 빈 살만 왕자가 깜짝 등장했다. 그는 빈 살만 왕세자의 이복형이다. 압둘라지즈 왕자는 알렉산데르 노바크 러시아 부총리와 회담도 가졌다. 노바크 부총리는 취임 전 러시아의 에너지장관을 지냈다. 압둘라지즈 왕자는 “양국 관계는 리야드의 날씨만큼이나 화창하다”고 말했다고 오일프라이스는 전했다.

이렇게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관계가 돈독한데, 바이든 대통령이 이제 와서 느닷없이 태도를 급변한다고 빈 살만 왕세자의 마음이 돌아서기도 어렵다. 바이든 대통령이 “증산을 직접 요청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힌 데는 이같은 현실을 고려한 것일 수도 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살만 국왕의 아들이다. 살만 국왕이 2015년 즉위했을 때 이미 80세였다. 그는 즉위한지 1년 만에 전임 국왕이 책봉했던 제1왕세자와 제2왕세자를 폐위하고 자신의 아들인 빈 살만 왕자를 제1왕세자로 정했다. 이때부터 실질적인 국정을 빈 살만 왕세자가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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