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기업 경영 책임 분명 있으나 애써 외면
달라지지 않은 구조조정에 가능성 있는 기업만 무너져
조선산업 담당 부처는 ‘금융위워회와 산은‧수은’ 농담도

지난 2015년 5월 22일 경남 통영시 광도면 안정국가산업단지에 소재한 성동조선해양 야드에서 육상건조한 200번째 선박이 육지에서 바다로 나가는 ‘로드아웃’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HSG성동조선
지난 2015년 5월 22일 경남 통영시 광도면 안정국가산업단지에 소재한 성동조선해양 야드에서 육상건조한 200번째 선박이 육지에서 바다로 나가는 ‘로드아웃’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HSG성동조선

[서울와이어 채명석 기자] “채권단의 관리를 받는 기업의 경영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질문에 답이 들어있다. 관리자인 채권단이다. 그런데, 채권단은 알면서도 아니라고 한다. 20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현재도 같은 질문과 대답 회피가 되풀이하고 있다.

기업이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릴 때는 담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 담보를 회사의 자산으로 제공하면 ‘물적담보’, 연대보증을 선 사람의 이름을 대고 빌리면 ‘인적담보’라고 한다. 물적‧인적담보로 돈을 빌릴 수 없을 때는 채권단의 관리와 감독에 따라 회생절차를 받으며 자금을 지원받는다. 즉, 채권단이 경영에 직접 개입해 담보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공식명칭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업계에서는 이를 ‘시스템 담보’라고 한다.

시스템 담보의 핵심은 채권단이 경영에 개입한다는 것이다. 통상 담보물을 가진 측은 기업 경영에 관여하지 않지만, 시스템 담보는 담보권자가 회사를 직접 운영한다. 채권단은 경영관리단을 파견해 자금 흐름을 통제하고, 회사의 빠른 회생을 위해 업계의 사정을 잘 아는 전문경영인을 선임해 회사 경영을 일임한다.

조직도상으로 경영의 책임은 전문경영인이 지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스템 담보는 전문경영인이 회사를 경영하는 게 아니다. 궁극적인 책임은 담보물 운영자인 채권단이 져야 한다. 경영관리단이 자금을 관리하면서 필요한 돈을 수혈하고, 전문경영인이 구조개편을 완수할 수 있도록 뒤에서 조정해줘야 한다. 그런데 채권단은 전문경영인의 뒤에 숨어 있다. 전문경영인을 방패 삼아 뒤에서 돈줄을 쥐고 기업의 생사를 좌지우지한다. 그래서 기업은 채권단을 ‘십자군’이 아닌 ‘저승사자’로 본다.

‘채권단’의 정식명칭은 ‘채권금융기관협의회’다. 기업의 부도 충격을 막기 위해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공동대처하자는 취지에서 지난 1997년 국책‧시중‧지방은행장들이 ‘부실 징후기업의 정상화 추진과 부실채권의 효율적 정리를 위한 금융기관 협약’(부도유예협약)에 합의 서명해 발효되었다.

부도유예협약은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의 여파로 사문화됐고, 1998년 6월 말 기업 구조정협약이 발효됨과 동시에 폐지되었으며, 2001년 7월 제정된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을 통해 채권단 중심의 기업 구조조정 절차가 마련되었다.

채권단의 목표는 기업에 제공한 자금을 회수하는 것이다. 기업의 현재와 미래 전망을 종합해 생존 가능성이 크면 살려서 수년에 걸쳐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금을 받거나, 다른 기업에 매각해 얻은 차익을 가져간다. 그렇지 못한 기업은 청산시킨다.

기업이 마지막 수단으로 채권단 관리를 신청하는 이유는 어떻게 해서든 생존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상식적으로 채권단 관리를 받는 기업은 부실을 털어내고 체력을 재정비해 살아나야 한다. 그런데, 수많은 기업이 채권단 수중에 들어간 뒤 그나마 남아있던 경쟁력마저 잃고,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은 지나도 채권단의 행태는 전혀 바뀌지 않고 있다.

채권단으로부터 피해를 본 대표적인 업종이 조선산업이다. SLS조선, SPP조선, 21세기조선, 진세조선, 삼호중공업, 오리에트조선 등이 자취를 감췄다. 새 주인을 맞이한 성동조선해양은 HSG성동조선으로 이름을 바꾸고 선박건조를 중단했다. 남은 중소 조선소는 대선조선과 한진중공업, STX조선해양 등 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사라진 조선사들 대부분은 채권단 관리를 거친 기업이다. 일부 기업은 부실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기업은 채권단의 객관적인 평가와 적절한 자금지원이 이뤄졌다면 살아날 가능성이 컸다. 채권단은 한국 조선산업이 중국의 물량 공세에 밀려 경쟁력을 상실한 사양 산업이라는 대전제를 깔고 기업을 평가한다. 첫 단추부터 부정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니, 분석이 제대로 나올 리 없다. 인건비를 줄이고, 자산을 팔아 자금을 마련하라고만 한다. 돈 되는 선박만 수주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예 조업을 중단하라고 한다. 제조업 사업장은 24시간 365일 제품을 생산해야 하고, 수주산업은 수주해야 일거리가 생기고 돈을 벌 수 있다. 그런데 비용이 들어가도 수익을 못 내니 조업을 하지 말란다. 일거리가 없는 사업장이라도 설비 및 시설 감가상각비, 인건비 등 간접비용은 계속 들어간다. 그 돈을 못 구하면 조선사는 자금압박을 받는다. 채권단에 지원을 요청하면 방만하게 경영했다면서 추가 자산 매각과 임직원 임금 반납, 거래처 납품 대금 지급 유예 및 중단 등 자구책을 마련하라고 언성을 높인다.

어떻게 해서든지 돈만 끌어내면 된다는 식이다. 철저한 금융적 시각으로만 바라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넘게 조선산업 구조조정이 진행됐고, 수많은 실패 사례도 나와 지금은 방법이 바뀌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준공으로 탄생한 조선산업은 지금까지 품목별 한국 수출액 순위에서 10위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 항공산업보다 외화가득률이 높고, 자동차산업과도 견줄 만한 규모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조선산업을 제대로 관리하는 정부 부처가 어디일까? 산업통상자원부일까, 해양수산부일까? 조선업 종사자들은 우스갯소리로 금융위원회와 KDB산업은행, 수출입은행이라고 한다. 문재인 정부 첫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었던 백운규 장관이 2017년 12월 STX조선해양을 방문한 자리에서 “그동안 조선산업 구조조정은 금융 측면에서만 접근했다. 이제는 산업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강조했고, 이후 관련 정책들이 나왔다. 하지만 나온 정책마다 업계의 현안을 해결해주지 못했다. 정책에는 자금이 투입되어야 하는 데 돈을 내야 하는 채권단에서 반대하는 바람에 유명무실한 것들만 나왔다는 것이다. 이에 기업들은 채권단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오히려 정책을 요구한 기업을 눈에 박힌 가시로 보고 더 목을 쥐고 있다고도 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돈이 없는 기업이 죄인이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다만 그들의 논리는 너무도 강해 산업적 측면의 설명이 끼어들 틈이 없다”라면서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통보에 획기적인 회생방안을 마련해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러면서 기업은 사망이 더 가까이 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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