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기업은 왜 채권단을 싫어하나
2013년 점화스위치 문제로 260만대 리콜
원인은 전체를 무시한 책임자 개개인의 결정
‘비용 절감’에만 몰두해 ‘안전’ 외면한 경영진
월가의 지원 받는 ‘숫자 놀음꾼’으로 채워져

[편집자 주] 기업은 ‘채권단’이 싫다. 그들을 일컬어 ‘저승사자’라는 말도 서슴없이 내뱉는다. 경영이 어려운 기업을 도와 정상화를 도모하겠다는 채권단을 왜 이리 싫어할까. 5년, 10년, 그 이상이 지나도 늘 채권단 관리체제에 들어간 기업들은 늘 바뀌지 않는 굴욕을 받는다고 하소연한다. 산업 논리는 전혀 먹히지 않는 그들의 금융 논리에, 살아날 가능성이 큰 기업들도 문을 닫는 사례가 허다하다고 기업들은 주장한다. 과연 채권단은 왜 돈을 쓰고도 욕을 먹는가. 그들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이번 기획에서는 기업의 입장에서, 최근 채권단과 가장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조선산업의 예를 채권단의 문제점을 짚어보기로 한다.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시에 소재한 GM 본사 앞에 성조기가 휘날리고 있다. 사진=GM 제공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시에 소재한 GM 본사 앞에 성조기가 휘날리고 있다. 사진=GM 제공

[서울와이어 채명석 기자] ‘금융화(financialisation)’라는 단어가 있다. 실물 경제를 뒷받침하는 역할에 불과했던 금융이 신자유주의가 대두되면서 금융 자본주의가 강조됐고, 급기야 금융이 경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을 뜻한다. 한발 더 나아가 일반 기업도 금융의 영향을 받아 모든 경제 상황을 금융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금융적 논리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경향이 강해지는 현상을 말다.

한국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 직후 금융화가 급진전했다. 금융화와 산업화는 매번 충돌하고 있지만, 후자가 점점 밀리는 형국이다. 산업화는 급격히 위축되면서 한국경제는 기업가 정신의 실종이라는 위기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그렇다면 금융화가 기업 경쟁력을 어떻게 쇠락시키는 것일까. ‘메이커스 AND 테이커스’를 쓴 라나 포루하는 책에서 미국 자동차 산업의 상징인 제너럴 모터스(GM)의 사례를 들어 금융화의 폐단을 설명했다. 채권단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전에 책에서 언급한 내용을 먼저 소개하기로 한다.

 

2013년 12월, 불과 몇 주 전에 GM의 차기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된 메라 바라는 이동하고 있는 차 안에서 측근인 제품 개발 책임자 마크 로이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생산‧판매한 차량의 점화 스위치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연락이었다. 후일 이 문제로 GM은 차량 260만 대를 리콜했다.

바라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로이스는 자기도 점화 스위치 문제를 이제야 파악했다면서 리콜을 단행해야겠다고 말했다. 대규모로 말이다. 그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말 그대로 기억이 안 난다. 왜냐하면, 대략 30일 정도였던 것 같은데, 무슨 조처를 해야 할지 검토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일이 너무 급하게 돌아갔다.”

GM이 작성한 초기 보고서에 따르면, 문제는 2005~2007년에 생산된 쉐보레 코발트(Chevrolet Cobalt)와 폰티악 G5(Pontiac G5)의 점화 스위치가 특정한 조건에 놓이면 꺼져 운전대가 잠기고 에어백이 작동하지 않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었다. 이 문제 때문에 수많은 상해는 물론 사망 사고까지 일어난 상황이었다. 리콜이 개시되었다. 우선은 수십만 대가, 이후에도 추가로 더 리콜되었다. 바라는 수뇌부를 소집해 전략 회의실을 꾸렸다. 최소 124명이 사망했고, 상해 사고는 수백 건에 달했다. 바라는 혹독한 의회 청문회에 네 차례나 불려 나갔고, GM은 벌금 9억 달러 외에도 민사 소송을 해결하느라 5억7500만 달러를 썼다. 바라는 “우리는 매일 회의를 했다. 처음에는 그저 알고 싶었다. (…) 도대체 왜,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원인이 무엇인지를.”

답은 간단하면서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했다. 일단 표면적으로 보면, GM의 점화 스위치 참사는 여러 개인이 내린 최악의 결정들이 집적된 결과였다. 불량 점화 스위치의 셍산 책임을 맡았던 엔지니어 레이 드조지오는 이 스위치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지옥에서 온 스위치”라 부를 정도였다. 수년에 걸쳐 스위치를 고친 끝에 그는 새로 설계하기는 하되 일련번호를 ‘바꾸지는 않기로’ 결정한다. 원래는 세 번호를 부여해야 해당 부품이 재설계됐다는 사실을 제조사가 인식할 수 있지만, 드조지오는 이런 식으로 먼젓번 문제를 은폐해 버렸다. 이 조치는 점화 스위치 오작동 문제를 조사하던 일선 직원들이 길을 잃게 했다.

GM은 사람들이 여기에 집중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점화 스위치 불량이 발견된 초기에 이를 안전이 아니라 ‘소비자 편의’에 관한 사안으로 오도한 탓에 훨씬 더 큰 문제를 방치하고 말았다. 당시 GM은 경영 구조가 기업 사일로(corporate silo, 좁고 긴 탑 모양의 곡식 저장고를 뜻하는 단어 사일로에서 유래한 용어로, 부서 간의 소통이 막힌 이기주의적 양상, 또는 그런 부서 자체를 가리킨다. 스스로 만들어 놓은 관료제와 분류 체계 속에 생각과 행동이 갇혀 버리는 현상을 사일로 효과라고 한다)들을 중심으로 짜여 있어서, 정보가 공유되지 않았고 사람들은 나쁜 소식을 윗선으로 보고하기를 꺼렸다. 이런 사일로는 전직 연방 검사 앤톤 발루카스(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조사 책임을 맡기도 했다)가 작성한 보고서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이 사일로는 더 깊숙하고 복잡한 문제로부터 파생되었다. 바로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자동차 생산에 몰두하던 GM이 금융시장의 눈치를 보며 돈벌이에 전념하는 회사로 탈바꿈한 데서 비롯된 결과였다.

◆“누구도 나서지 않고, 책임지지 않았다”

총 315페이지에 달하는 발루카스 보고서에는 침묵과 호도, 책임 전가가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던 GM의 기업 문화를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그 결과, 점화 스위치 문제를 이미 많은 직원이 알고 있었고 해결할 기회 또한 숱하게 많았음에도 아무도 나서서 막지 않은 사태가 벌어졌다.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는 ‘GM식 끄덕이기’나 ‘GM식 경례’ 같은 사내 은어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전자는 회의 석상에서 실행 계획에 참석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찬동하더라도 일단 자리를 뜨고 나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을 뜻하고, 후자는 누군가 책임을 물으면 팔짱을 낀 채 손가락으로 다른 동료를 가리키는 것을 의미한다.

발루카스 보고서는 GM의 문화가 “그 누구도 혼자서는 결정을 내리지 않으려 했던” 무책임의 문화였음을 폭로했다. GM의 모든 부서에 걸쳐 20만 명이 넘는 직원 중 실제로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똑같은 문제에 매달리고 있는 사람들끼리도 그랬다. 바로 이런 이유로, 시동이 꺼져 있는 경우 (탑승자가 질식하는 것을 막고자) 에어백이 작동하지 않도록 설계한 엔지니어들은 스위치 설계자들이 차량 운행 중에도 가끔 시동을 꺼 버리는 점화 스위치를 만들었음을 알지 못했다. 그러니 정작 에어백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펴지지 않곤 했다.

이에 대해 발루카스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GM 직원들이 스위치 결함을 초기에 바로잡지 못한 결정적 요인은 아주 간단하다. 자동차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위치 담당자들은 에어백 담당자들과 얘기를 나누지 않았고, 에어백 팀은 법무팀과 소송하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 법무팀에는 에어백이 작동하지 않은 스위치 관련 사고에 휘말린 차량 탑승자들의 항의가 점점 더 많이 날아들고 있었다.

◆월가의 거센 비용 절감 요구에 굴복한 車업계

디트로이트의 침묵은 월가의 소음에서 비롯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소통 부재가 벌어지던 당시 GM 등의 자동차회사들은 비용 절감과 지출 억제에 나서라는 금융기관들의 유달리 거센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2001년에서 2007년까지, GM의 세계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15%에서 13.3%로 떨어졌다. 월가는 기분이 언짢아졌고, GM뿐만 아니라 자동차 업계 전체에 허리띠를 졸라맬 것을 요구했다. 2000년대에는 유별나리만치 예산 삭감의 바람이 몰아쳤고, GM 수뇌부는 온통 ‘비용 관리의 필요성’에만 몰두해 있었다. GM의 한 엔지니어에 따르면, 비용 관리는 회사의 “전반적 문화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프로젝트를 시간과 예산에 맞추어 운용하는 것 만이 최대 관심사였다. 품질과 안전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뒤바뀐 우선순위는 회사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부품 공급업체를 선정할 때도 품질이 아닌 가격을 우선시했다. 어떤 차종을 담당하는 사업부가 그 차의 개발이나 생산 비용이 늘어날 만한 성능 개선을 원할 경우, 그로 인해 GM 전체에서 발생하는 추가 비용을 모두 떠맡아야 했다. 드조지오가 스위치 개선 작업을 회사에 알리지 않으려 한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었을 것이다. 생산 속도를 늦추고 수백만 달러의 예산을 추가시키는 일을 선뜻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쉐보레 코발트를 비롯한 GM의 차들은 ‘근소한 이윤’을 내기 위해 ‘비용에 주의해야 하는’ 제품으로 취급되었다. 이렇게 생산된 차들은 결국 최소 124명의 생명을 앗아 갔는데, 그중에는 충돌에 따른 화재로 목숨을 잃은 이들도 있었다. 당시 GM은 이 차들을 렌터카 회사 같은 큰손들에게 대량으로 할인 판매하고 있었다. 결코, 좋은 징후가 아니었다. 바라 CEO는 만약 점화 스위치 문제가 안전과 직결되는 사안임을 직원들이 잘 이해하고 있었더라면 진작에 문제 제기가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고화된 사일로 속에 정보가 갇힌 탓에 그리되지 않았다. 스위치 문제가 일단 ‘안전’ 항목이 아니라 ‘소비자 편의’ 항목으로 분류되자, 이 문제와 관련된 의사 결정의 기준은 비용 관리가 되었다.

◆‘숫자 노름꾼’이 ‘자동차맨’을 밀어내다

비용을 절감하고 “숫자를 잘 만들라”는 월가의 압력이 점화 스위치 사태에서 큰 몫을 차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이것은 폐쇄적 사일로와, 더 나아가 그런 사일로를 낳은 금융적 사고방식이라는 좀 더 근원적인 문제의 한 가지 증상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GM의 수뇌부는 ‘자동차맨(car guy)’이 아니라 ‘숫자 노름꾼(bean counter)’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숫자 노름꾼은 직역하면 ‘콩 세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기업의 재무나 회계에 종사하는 전문 인력을 지칭하는 말로, 계량화, 수치화를 과도하게 앞세우다가 정작 중요한 문제를 살피지 못하는 성향을 비꼬는 표현이다. 이 말은 GM 부회장을 지낸 밥 루츠를 비롯해 디트로이트의 많은 사람이 쓰는 표현이다. 루츠는 자신이 쓴 저서 ‘빈 카운터스’에 당시 자동차 업계의 풍토를 서술하면서 이 단어를 사용했다. 이 책은 GM을 비롯한 자동차 제조사들에서 금융 지식으로 무장한 MBA(경영학석사) 출신 관리자들이 엔지니어들을 압도하면서 제품보다 재무 지표를 중시하는 문화가 형성된 과정을 풀어냈다. 경영진은 고객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라면서 조악한 제품의 생산을 승인하는가 하면, 차량 재떨이를 영하 40도에서 작동하도록 설계하라는 어이없는 회사 지침 때문에 캐딜락의 재떨이가 열리지 않기도 했다. 회사 방침에 반대하던 ‘자동차맨’ 루츠가 어떻게 반응했을지는 뻔하다. 현장에 나가서는 기죽은 현장 책임자에게 소리쳤다. “뭐, 추운 노스다코타 고객들은 좋아하겠네. 너무 형편없어서 다른 사람에게는 어림도 없겠지만!”

숫자 노름꾼을 비웃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GM이 현재 안고 있는 문제들과 사내에 만연한 금융적 사고방식은 직접 연결되어 있다.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루츠는 2014년 8월 나와의 인터뷰에서 GM의 점화 스위치 위기를 키운 사일로는 경영진이 전반적인 품질 및 소비자 만족보다 재무 지표에 집착한 데서 비롯된 현상임을 확신했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숫자 노름꾼들은 조직을 통제가 쉽도록 잘게 나누는 것과 부분 최적화가 바람직하다고 굳게 믿기 때문에 금융이 회사의 중심이 되면 사일로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회계사의 관점에서는 이 구조가 무척 좋다. 회사의 여러 영역을 대차대조표에 반영하기가 쉽고, 하향식 경영 관리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루츠는 이렇게 말했다. “이 모든 것은 재무적 통제 사고에서 나온다. 자기네 손아귀에서 위험 요인이 벗어나게 만드는 전략이나 철학을 접할 때마다 그 사람들은 전전긍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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