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엑스를 처음 갔던 게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2~3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서울 국제무역박람회(SITRA)’를 보러 가기 위해서였다. 당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트레이드 센터 부지는 한국무역협회가 정부로부터 매입한 지 얼마 안 되어 말 그대로 허허벌판이었다. 서울 국제무역박람회는 임시 건물로 지어 만든 대기업관, 중소기업관 등으로 진행되었는데, 박람회를 구경하려는 인파가 엄청나게 많아서 입장할 때마다 긴 줄을 서야 했다.

그때의 코엑스는 코엑스(COEX)가 아니라 코엑스(KOEX)였다. ‘KOEX’ 간판이 붙은 임시 건물에서 외국기업 전시 부스를 돌며 구경했다. 이후 중학교 졸업 때까지 기자는 중간고사 또는 기말고사가 끝나 오후 시간이 비는 날, 또는 주말마다 늘 혼자서 코엑스에 가서 전시회를 구경했다. 처음 건설한 코엑스는 1000원을 내고 입장권을 구매하면 3개 전시장을 볼 수 있어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기자가 된 뒤 코엑스와 다시 만났다. 토요일 오전 근무가 끝나면 코엑스에 가서 전시회 참가업체 부스를 돌며 취재하고 자료를 얻어와 공부하고 분석하며 산업을 배웠다. 얼마 후에는 코엑스 출입 기자가 되어 아예 전시산업을 취재했다. 코엑스를 계기로 킨텍스(KINTEX) 등 전국의 전시장과 전시산업을 접했고, 관계자들도 많이 만났으며, 해외 전시회도 많이 구경했다. 기자가 가장 오래 인연을 맺고 있는 출입처 가운데 하나다. 어린 시절까지 더하면 조만간 코엑스를 알게 된 지 40년이 된다.

전시회를 많이 다녀본 분들은 느끼겠지만, 정말로 상황이 재미있다. 각 기업이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신제품들을 대거 출품하고, 참관객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다양한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기업 부스마다 증정하는 기념품들을 받는 재미도 쏠쏠하다. 전시회장에 오면 누구나 즐겁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전시회를 여기까지만 봤다면 절반도 경험한 것이 아니다. 전시장 관람 경험이 많아지면서 이전엔 보지 못했던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행사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바이어와 셀러다. 전시회는 통상 3~5일 동안 진행되지만, 사실 이 자리를 만들기 위해 전시회 전후 3~6개월의 시간을 준비하는 데 할애한다. 참가업체, 즉 셀러는 부스에 내놓을 제품‧상품을 선정하고, 카탈로그를 만들고, 부스 디자인을 정한다. 그리고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바이어들에게 온‧오프라인으로 이번 전시회에 우리 회사가 나오니 한국을 방문해 전시회에서 만나자는 연락을 한다. 거래를 제안하는 사전 마케팅이다. 수많은 업체로부터 제안을 받은 바이어도 이들 가운데에서 자신이 원하는 아이템을 분류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그렇게 해서 제안을 수용하고 방문 기간과 상담 시간을 사전에 수립한 뒤 한국을 찾아온다.

그렇게 전시장 상담 부스에서 만난 바이어와 셀러들은 상담을 진행한다. 셀러는 가장 비싼 가격에 많은 물량을 팔고자 하고, 바이어는 되도록 낮은 가격에 경쟁사 셀러들은 취급하지 못하도록 독점 구매 권한을 요청하는 등 항목 하나하나를 모두 따져가며 거래조건을 조율한다.

이런 장면이 어느 순간부터 기자의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치열한 상담 장면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옆자리에 앉아서 볼 순 없지만, 멀찍이서 봐도 얼마나 상담에 열중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사전 조율이 상당 수준 이뤄졌거나, 아이템이 너무나 좋아 물어볼 필요가 없다면 전시회 기간에 바로 계약을 체결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전시회가 끝난 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뒤 이어지는 사전 상담 과정을 거쳐 성사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비대면(Untact)이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사실 무역 거래는 비대면이 원칙이다. 비대면 속에 공식적으로 대면을 할 수 있는 행사가 전시회다. 만날 수 있는 자리기 때문에 전시회는 존재 이유가 충분하다. 전시회는 또 다른 시장이기도 하기에, 전시회 기간 바이어와 셀러가 붐비는 국가는 경제도 성장한다.

코엑스를 비롯한 국내외 전시장들이 전시회를 거의 개최하지 못했다. 코엑스만 보더라도 증‧개축과 대규모 컨벤션을 제외하면 전시장이 텅 빈 것은 설립 이래 2020년이 처음이지 싶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방역 당국의 집합금지 명령 조치 때문이었다. 2월에 중단되어 6월에 열린 뒤 8월에 다시 문을 닫아 2개월 넘게 멈췄다. 전시업계는 이로 인해 개최 예정이었던 362건의 전시회 중 254건이 취소됐고,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100% 감소했으며, 지금까지 업계가 입은 손실만 2조 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다행히 정부가 전국적 사회적 거리 두기를 1단계로 하향 조정하면서 전시회는 재개된다. 코엑스와 킨텍스는 오는 12일부터 전시회를 열고, 다른 전시장들도 이 시기를 전후해 행사를 개최한다..

6월에 한시적으로 전시회가 다시 열렸을 당시 전시 주최자와 전시장은 철저한 방역 시스템을 운영했다고 자부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목격되면서 불필요한 불안감을 키운 점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을 보완해 이번부터는 더욱 확실한 방역 시스템을 가동하겠다는 계획이라고 한다.

어렵게 오프라인 전시회를 연다. 이제는 전시장 문을 닫는 일은 없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전시회가 성공적으로 운영된다면, 이는 활력적인 한국경제를 보여주는 상징이 될 것이다.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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