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모스크바에 모피 직매장 개설, 이듬해 공장 열어
노태우 대통령 소련방문 전후 대기업 총수들 진출 추진
5년 만에 현지 정치‧경제 여건변화로 사업 여건 불안

국내기업의 대소합작 투자 1호 기업인 진도는 지난 1990년 11월 모스크바 시내에 연건평 800평 규모의 고급 모피의류 제조공장을 완공했다. 1990년 진도 모스크바 공장에서 직원들이 모피를 생산하고 있다. 사진=국가기록원
국내기업의 대소합작 투자 1호 기업인 진도는 지난 1990년 11월 모스크바 시내에 연건평 800평 규모의 고급 모피의류 제조공장을 완공했다. 1990년 진도 모스크바 공장에서 직원들이 모피를 생산하고 있다. 사진=국가기록원

[서울와이어 채명석 기자] 소련 시장에 대한 우리 기업들의 관심도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재벌그룹 총수들의 움직임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1990년 12월 13일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소련 방문에는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비롯,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 이동찬 코오롱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구평회 럭키금성상사 회장, 이석희(주)대우 부회장, 조중건 대한항공 사장, 장치혁 고려합섬 회장 등 재벌그룹의 회장들이 대거 수행해 소련 붐을 불러일으켰다.

노 대통령의 방소 수행까지 합쳐 8번째 소련을 방문하게 된 정주영 회장은 ‘저 눈 덮인 시베리아 벌판에 기업인으로서 나의 마지막 승부를 걸고 싶다’며 대륙횡단열차로 시베리아를 지나던 때의 느낌을 자신의 일기장에 기록하기도 해 그의 소련시장에 대한 집념의 일단을 보여주기도 했다.

◆재벌그룹 총수들 대거 북방으로

1990년 이후 소련 붐은 내국인의 방소 현황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소련에 입국한 사람은 1986년 20명, 1987년 37명, 1988년 61명이었던 것이 1989년에는 336명으로 늘었고 1990년에는 3460명으로 전년보다 10배 이상 증가했다.

또 1991년에는 9470명, 1992년에는 1만4756명, 1993년 들어 10월 말까지 1만8343명이 소련을 찾았다. 대기업들은 초기 소련시장 개척 당시 단순 상품교역보다는 원목, 원유, 가스 등을 중심으로 한 자원개발과 합작공장 설립, 소련의 첨단 기초과학 분야와 우리의 생산기술을 접목시키는 형태의 기술도입 쪽에 많은 관심을 뒀다.

대기업들의 이 같은 소련 열풍에도 불구하고 대소 합작투자 1호를 기록한 것은 정작 중소기업인 진도였다. 진도는 1980년대 초 영국 등지의 원피 국제경매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소련측 원피 관계자들과 인맥을 형성해 1985년부터 매년 레닌그라드 원피 국제경매에 직접 참가하게 됐고 같은 해 소련측으로부터 합작투자 제의를 받게 된다.

진도는 이 같은 인연을 배경으로 1989년 3월 80만달러를 투입해 소련의 인터릭사와 합작, 진도루스사를 설립하고 모스크바 중심가에 있는 인투리스트호텔 1층 등 2곳에 모피 직매장을 개설했다. 진도루스는 이듬해 11월 모스크바 시내에 연건평 800평 규모의 고급 모피의류 제조공장을 완공, 내수판매와 수출을 겸하게 됐다.

1988년께부터 우리 기업인들에게 엄청난 희망과 기대를 갖게 했던 소련 시장은 그러나 불과 5년도 지나기 전에 동구권 시장과 마찬가지로 기대와는 다른 ‘신기루’로 전락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았다. 과거 수십 년간 굳어져온 사회주의 계획 경제의 틀이 하루 아침에 자본주의 경제와 접목이 이뤄지다 보니 어느덧 공공 분배에 익숙해져 있던 국민들이 이에 적응치 못해 민생은 더욱 피폐해져 갔다. 정치적으로는 고르바초프에 반대하는 세력의 부상 및 각 공화국과 동구권 국가들의 분열 및 독립을 불러일으키면서 결국 군사 쿠데타라는 최악의 사태를 겪으며 고르바초프는 불명예 퇴진을 할 만큼 정치적 불안은 극에 달했다.

고르바초프에 이어 옐친 대통령이 러시아를 이끌었으나 경제는 여전히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치안 부재 및 주거난, 공무원들의 각종 비리 등이 난무했으며, 당시 현지에 진출한 우리 상사 직원들은 모스크바 중심부에서 40㎞ 바깥으로는 나갈 수 없는 행동반경 제한 등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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