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전자상가가 이슈다.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지난 17일부터 최신 그래픽카드 ‘지포스 RTX3080’ 시리즈를 기존 유통 창구인 용산 전자상가 대신 쿠팡, 11번가 등 오픈마켓에서 저렴한 가격에 판매를 시작하면서부터다. 엔비디아도 예상을 뛰어넘는 판매대열에 품귀현상을 빚자 사과문을 올려야 했다. 단순히 제품 성능이 뛰어나다는 점만 부각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복잡한 용산 전자상가의 유통구조에 불만이 높았던 소비자들이 오픈마켓으로 몰린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엔비디아는 ‘용산 이탈’의 ‘트리거(trigger·방아쇠)’로 작용했다. 곧바로 이번에는 온라인 중개거래 플랫폼 지마켓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가 컴퓨터 부품을 직매입하겠다며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이미 직매입을 하고 있던 쿠팡에 이어 이베이코리아까지 이커머스 기업까지 용산 전자상가가 사실상 독점해 왔던 직매입에 진출하면서 컴퓨터 관련 부품 유통시장이 요동을 치고 있다. 여기에 중고 컴퓨터 브랜드 리뉴올PC가 이마트 일렉트로마트에 입점한 것을 계기로, 업계에서는 대기업인 신세계가 이 부문 시장에서 용산 전자상가와 경쟁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온·오프라인 양측에서 용산 전자상가가 공격을 받는 모습이다.

1987년 개장한 용산 전자상가는 지금까지 국내 최대 전자제품 상가군으로 불리어왔다. 낙후된 종로 세운상가를 대신해, 그곳에 입주해 있던 상가들을 이전시켜 현대화된 건물에서 보다 고객친화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지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용산 전자상가는 외형만 새로워졌을 뿐, 유통구조는 세운상가와 차별점이 거의 없었다. 대형 전자·IT업계에서 대량 직구매한 제품과 해외에서 수입한 물품을 소비자가격보다 저렴하게 판매한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이곳에서 접할 수 있는 제품은 각사 브랜드 매장에서 판매하는 그것에 비해 품질은 떨어졌다. 가격이 싼 만큼 품질은 감내하라는 것이다. 또한 고객이 구매를 희망하는 특정 인기 제품은 구매가 어려웠고, 대신 매장에서 추천하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품을 어쩔 수 없이 사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동일한 제품이라도 상가 입구에 위치한 매장이 가장 비싸고, 구석에 있는 매장은 쌌다.

이러한 용산 전자상가의 유통구조는 청과물·수산물 등 국내 유통산업 구조와 유사하다. 예를 들어, 산지에서 농부로부터 배추를 한 포기당 100원에 구매한 상인이 중간상인에게 250원에 판다. 중간상인이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으로 가지고 올라가 최저 가격을 400원에서 경매를 시작해 500~600원 정도에 낙찰된다. 이날 날씨 사정으로 물량수급이 어려우면 더 높은 가격까지 치솟기도 한다. 경매를 통해 배추를 구매한 상인은 청량리 등 대형 시장으로 싣고가서 도매상인들에게 600~700원에 판다. 도매상은 동내 시장상인에게 800원에 넘긴다. 이렇게 해서 최종 소비자가 동내 시장에서 구매하는 배추 가격은 900~1000원이 된다. 산지에서 최종 소비자까지 가격이 무려 10배나 오르는 것이다.

일본 유통구조가 이와 유사하다고 한다. 일본은 모두가 함께 나누며 잘 사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유통 단계에 새로운 상인들이 들어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이러한 문화를 접한 후 한국에도 같은 구조가 이어졌던 것이다.

용산 전자상가의 유통에 막강한 힘을 발휘한 또 다른 축은 밀수였다. 1980~1990년대 용산 전자상가를 가는 고객들 가운데 상당수는 일본제 제품을 싸려는 사람들이었다. 대부분의 제품들은 모두 밀수품이었다. 일본 제품에 대한 수입관세율이 높아지다 보니 밀수품에 수요가 높았고, 이를 조직적으로 연계하는 거대 밀수상들이 용산 전자상가를 지배했다. 특히 일본의 대표적 범죄조직인 야쿠자의 돈세탁과 연결된 제품이 용산 전자상가에 쏟아져 들어올 때도 있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도 전해진다. 용산 전자상가에서 자주 쇼핑을 해 본 고객들이라면, ‘이날따라 어떤 상가를 가도 유달리 한 가지 브랜드 제품만 엄청 싸게 판다고 추천한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이들 제품은 십중팔구 밀수했거나 불공정한 경로를 통해 유입된 물건이라고 보면 된다. 현금 마련이 시급하고, 재고 떨이를 하려는 국내 업체들도 이 같은 방법을 많이 활용했다고 한다. 용산 전자상가뿐만 아니라 이후에 개장한 전자매장도 유통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용산구나 서울시, 정부는 이러한 배경을 모른다고 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고객으로 세운상가와 용산 전자상가를 돌아다녔던 기자도 알 정도면 이는 ‘공공연한 비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선에 노력을 안했던 것은 결국 용산 전자상가에서 이뤄지는 거래액 규모와 고용창출, 방문객 유입에 용산 전자상가와 궤를 같이 하는 각종 부대시설 등에서 들어오는 세수입 때문이 아니었던 게 아닌가 한다.

수수방관 하는 사이 용산 전자상가는 조금씩 위상을 잃기 시작했고, 엔비디아 사건 하나로 핵폭탄을 맞았다. 사라지진 않겠지만, 존재만 하는 시장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생존하려면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컴퓨터 학도를 꿈꾸던 학생 시절, ‘용산에 가면 내가 꿈꾸는 제품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매주 토요일마다 이곳을 찾아가 하루를 보내도 시간이 아깝지 않았던 용산 전자상가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부장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와이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